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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 OF MIND/단상 [think]

광고와 예술의 구분 - 광고쟁이와 칸국제광고제

by 또로로록 2008. 7. 30.



매년 개최되는 광고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축제. 깐느국제광고제

광고를 예술의 한 분야로 봐야할까요?
'예술이 아니다' 라는 의견이 중론입니다.
아니, 예술의 한 장르로 구분 할 수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예술이란 미를 창조하고 미를 위해 존재하는 고차원 적인 기술로
흔히  문학, 미술,무용, 건축, 연극, 음악의 장르로 구분됩니다.
예로부터 인간은 심미적 욕구, 자기표현의 욕구,
혹은 주술적인 목적으로 예술을 탄생시켰습니다.
실용성의 측면에서 예술의 기원을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예술이 시대를 불문하고 향유되어 지는 특징을 지녔다면
광고는 일시적으로 소비되며 효용가치가 떨어진 작품은 잊혀지게 되는 운명을 지녔습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문화의 커다란 흐름 속에 예술이 존재했다면
광고는 클라이언트의 전략과 예산의 굴레 안에 존재하고 사라집니다.
예술의 한 장르로 광고를 포함시키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던 예술가들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겠죠.

광고가 다양한 의미를 창출해내고 미적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광고는 물건을 팔기위한 목적을 지닌 상업적 부산물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광고가 많이 공격받는 이유중 하나도 스스로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고가 교육적, 오락적, 또는 정보,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교육, 오락, 정보 라고 할 수 없는 것 처럼 말이죠.

예술작품들이 검열된다는 것은 미를 추구할 권리,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광고의 검열과 규제는 공공연하게 수면위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소비를 조장하고 허위의 사실을 믿게 만드는 등의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내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술만이 고차원적이고
매스 미디어는 하위 문화라는 고정관념은 큰 문제입니다.
그것은 권위의 상징폭력입니다.
대상의 가치에 위계질서를 매기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학습되어진 고정관념에서 비롯됩니다.
다다이즘, 포스트모던, 초현실주의, 팝아트 등
주류를 벗어난 예술의 경향 역시 받아들여지기 까지 꽤나 큰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역시 이분법적인 가치의 서열화가 문제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을 대표하는 장르의 시상식과 같은 형태로
광고 역시 시상식이 존재하여 매년 수상작을 배출해 낸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시상식의 주인공들은 순수한 광고인들입니다.
삼성, 현대, 코카콜라, 나이키 등 굴지의 광고주들은 이 축제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바로 광고를 현장에서 기획하고 만들었던 그들이 주인공입니다.

광고의 커다란 매커니즘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의 땀과 열정,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그들의 고뇌와 노고에 포커스를 맞춰 봤을 때  
그 결과물이 예술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광고가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도록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광고를 상업적 결과물이거나 마케팅의 일환쯤으로 생각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죠.
창작활동을 하는 그들 역시 광고주를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일한다지만
단지 그것 뿐이라면 왜 광고를 하고싶어 하겠습니까.

현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것을 표현해 내는 과정의 즐거움 때문입니다.
하나의 결과물을 얻기위해 고민하고 선택하여 표현한다는 것은 예술가의 혼과 닮아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을 서로 격려하고 되새겨 보기 위한 그들만의 축제.
그것이 바로 깐느광고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 시간만큼은 물건을 팔기 위함이 아닌 예술가의 혼과 열정으로 휘감겨 있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자신을 예술가로 불러주길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광고쟁이' 로 불려지길 바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니까.
그리고 나도 역시 그렇게 불려지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취업이 된다면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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